2019년 유럽여행을 하며 봤던 미술작품과 풍경들에 저의 감상을 더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습니다. 드로잉과 에세이는 https://blog.naver.com/woennr/221803294235 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Nan goldin / Skinhead having a sex / 1978 이 날은 테이트 모던에 두번째 갔던 날이었다. 상설전을 두번에 나누어 보는데도, 집중력과 시간이 부족하여 모든 작품을 꼼꼼히 감상하지 못해서 그저 내 눈에 콱 박히는 몇몇 작품들을 느긋하게 보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작품들은 사진으로도 찍어두었다. 그 중 하나인 작품인 Nan goldin의 Skinhead having a sex(1978). Nan goldin의 사진은 꽤나 선정적이고 냉소적이고 폭력적이고 자극적이어서 감상하는 동안 몸의 몇몇 구석이 짜릿 찌릿해지는 맛이 있다. 이 작품은 침대 위에 몸을 포개고 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어두운 방과 채도 낮은 침대의 색감과 상반되는 밝은 피부 빛깔의 둘은,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를 보는 것 같다. 상대방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서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힘이 들어간 남자, 팔과 등에 흐르는 근육의 선, 살짝 내보이는 얼굴의 표정. 그리고 허벅지 위까지 올라온 까만 스타킹과 하얀색 팬티를 입은, 키스를 받는 상대방. 재미있는 점은 묘사할 게 많은 남자와는 달리 누워있는 이에 대한 설명은 단순해진다. 다른 특징을 보여주는 두 등장인물과 단조로운 색감, 화면을 구성하는 최소한의 등장요소는 둘의 섹스의 한 순간을 강렬하게 만든다. 작품을 빤히 보다보면 저 살결의 냄새도. 몸 위에서 짓누르고 있는 누군가의 무게감도 체온도 알 것 같다. 그런 감상의 순간이 건드려 깨우는 감각들이 좋다.

No name / 작가 및 연도 미상 유럽은 마켓문화가 활성화 되어있다. 이벤트성 마켓도 있지만 매주 주기적으로 열리는 마켓도 있으며, 각 지역을 대표하는 마켓이기도 하다. 내가 가본 마켓들은 구제옷과 신발, 음반, 책, 그릇, 컵, 재떨이, 주전자, 파이프, 옷감, 단추, 안경, 보석함, 브로치, 카페트 등등. 한때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졌던 모든 물건들이 총망라 되어있었다. 우리나라에서의 마켓과는 다른 성격과 분위기와 규모인지라, 나는 마켓에 갈 때마다 오늘 가는 곳은 어떤 물건들을 볼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이었다.
이 날은 파리의 방브마켓에 다녀왔다. 방브마켓은 정말이지, 내가 가본 유럽의 마켓들 중 가장 질서도 없고 규칙도 없는 곳이었다. 한참의 세월을 보낸 독특하고 진귀하고 멋스러운 것들이 즐비해 있었다. 이런게 왜 여기 있지 싶을 정도로 황당한 물건들이 있었는데, 가족사진이 끼워져있는 액자, 예쁜 모양의 돌, 이 나간 그릇, 곰팡이 핀 책, 닦지도 않은 유리컵 같은 것들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되는 물건들은 죄다 가져다놓고 파는 것 같다. 어이없어서 웃음이 픽하고 나오는데 또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유의 멋짐과 예쁜 모양과 색과 질감을 가진 물건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나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마켓이었다. 이 곳은 예상 밖의, 숨은 보석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그린 이 그림은 파리의 방브마켓에서 팔고 있던 그림이었다. 이 부스에서는 양초도 팔고 리스도 팔고 물컵도 팔았는데, 테이블에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이 이 그림이었다. 큰 붓으로 거침 없이 바탕을 칠하고, 그다음 중간 붓으로 산과 강을, 마지막 얇은 붓으로 나뭇가지의 선들을 슥슥 그려내어 단숨에 그린 것 같았다. 붓의 터치가 시원시원해서 보는 내가 속이 다 시원했다. 액자는 그림에 맞지 않게 조금 컸는데, 아무래도 괜찮았는지 액자틀의 위 아래 쪽과 껴놓은 그림 사이에는 남는 공간이 있었다. 그린이는 정말 대충인건지 쿨한건지 멋지네. 라고 생각했다.
그의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모작을 해보았다. 나는 따라하지 못할 과감한 붓질, 부족한 듯 적당해 보이는 절제된 묘사, 내가 잘 다루지 못하는 색감, 액자와 그림이 서로 크기가 맞지 않아도 상관없는 작가의 과감함. 이런 것들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그리기를 할 때 쉬이 흉내낼 수 없는 부분들이어서, 선망의 눈으로 아름답게 봤던 그림이었다.

Pierre bonnard / The croquet game / 1892 나는 대부분의 회화 그림들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데, 그 중에서는 인상파와 야수파의 그림을 가장 좋아한다. 인상파에서는 대상의 정서와 감각에 집중하여 색감, 질감, 분위기, 그것들을 조화롭고 아름답게 그려낸 점을 좋아한다. 야수파에서는 과감한 필치와 단순한 색의 사용, 그 안에서의 고른 절제와 균형을 좋아한다.내가 미술관에서 걷다가 멈추어 한참 시간을 들여 보는 그림들은, 보통 인상파와 야수파의 그림들이다. 나는 추상작업을 하지만(이 블로그에서 그려 올리는 그림은 구상이긴 하지만, 본 작업은 추상을 하고 있다) 때때로 좋은 그림을 보면 나도 저들이 쓰는 선과 색과 구도와 대상을 고르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빈 화면에 즉흥적으로 채워가는 그림을 습관화해온지라, 나에게는 미리 준비된 것들을 보고 그리는 일이란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나도 저런 그림을 그릴 줄 알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으로 마음에 드는 그림들은 사진으로 찍어 모아둔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사진으로 찍었던 작품들 중, 나의 사진 폴더에 가장 많은 자리수를 차지한 것 중 하나가 Pierre bonnard의 풍경이었다. 톤다운된 색감과 굵은 선의 흐름, 절제된 묘사를 하면서도 놓치지 않는 디테일, 안정감 있는 구도.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이었는데, 보통 이런 그림을 보면 아! 나도 이런 그림 하나 갖고싶다는 생각보다는 아! 나도 이런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어서인가보다. 그의 재능과 감각을 부러워하며 가장 윗 그림의 자세히 그려진 것들부터, 아랫 그림에 깔린 색감까지 여기저기 뜯어보고 살펴보며 감상을 한다.
미술관에서 작업공간으로 돌아온 나는 오일파스텔을 들어본다. 그의 작품을 따라 그리는 것이지만, 나의 손으로 그리는 나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그림 같이 완성 되었으면 좋겠다. 싶지만 그래도 나다운 그림이길 바라며 그려가게 된다. 아마도 내가 동경하는 것은. 이 작품을 봤을 때 내 마음 한 가운데에 우수수하고 별이 쏟아지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런 경험을 줄 수 있는 그림이었으면 하는 것일테다. 풍경화고 인물화고 그려본지가 까마득한 내가 애를 먹으며 이 그림을 그려갈 땐, 오르세에서 그의 그림을 봤던 때처럼 내 마음이 좋고 설레서 작은 떨림을 갖게되는 순간을 기대하며 그렸다.

Pierre bonnard / la manucure / 1912 위의 그림에 이어, 나의 사진 폴더에 자리한 그림 중 하나이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잘 그려내나(말이...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 같이 이해되지만 어쨌든 그렇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잘 그려내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도 자연물은 잘 그려내는 편인데, 인물이나 동물, 사물같은 것들은 잘 못그려낸다. 자연물은, 예를 들어 활짝 핀 장미꽃 한송이를 그린다고 해보자. 활짝 핀 장미꽃보다 더 흐드러지게 피면 더 핀 장미꽃을 그렸다고 할 수 있고, 꽃잎을 촘촘히 그리면 덜 핀 장미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물을 그릴 때는, 내가 그 사람의 귀를 실제보다 좀 더 아래에 그렸다고 그 사람의 귀가 흘러 내려간거에요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니, 얼굴의 비율과 모양을 잘 관찰하고 계산해서 그려야한다. 내가 잘 못그리는 것들이어서 잘 그려야한다는 압박에서인지 나는 인물, 동물, 사물을 그릴 때에는 사진과 똑같게 잘그리거나 아예 못그려버린다. 그러니 내 손에서 그려진 이것들은 누군가의 그림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일말의 흔적이나 분위기가 없이, 그저 딱딱하기만 하다. 그리는 나도 어 이렇게 그리려는 게 아닌데... 라는 눈치를 채며 그릴 때도 많다.
이렇다하니 나는 인물과 동물, 사물을 잘 그려낸 그림들을 보면 또 유심히 보게 된다. 오르세에서 또 다시 머물며 봤던 이 그림은,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는 여인을 그린 Pierre bonnard의 그림이다. 전체적인 색의 대비가 없이 그색이 그색인양 비슷한 톤으로 모든 것들이 어울리는 이 그림은, 어떤 것이 주연이고 조연이고 단역이고 할 것 없이 두루뭉술한 느낌이 좋았다. 이 그림은 캔버스에 유화이지만, 마치 장지에 분채처럼 보이기도 하다. 이전에 봤던 The croquet game(1892)처럼 두껍고 묵직한 붓질로 레이어간의 간극이 느껴지지 않는 채색법이 아니고, 얇게 켜켜이 칠해가며 쌓은 느낌이다. 덧칠이라는 것은 종이가 마르지 않았을 때, 그리고 쌓으면 쌓을수록 맑고 또렷한 색감을 표현하기가 어려워진다. 아래층의 색과 윗층의 색이 섞이거나 쌓이면서 각각이 가진 본래의 색감을 잃기 마련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의 피부색을 자세히 살피면, 비슷한 톤과 다양한 색이 켜켜이 쌓여있거나 겹쳐있음을 알아볼 수 있다. 다양한 색이 중첩되면서 흐리터분해지고 또 오묘한 느낌의 색감은 어떤 색들을 썼나 곰곰히 살펴보게도 되는데, 얇은 붓칠이 몇차례 올라간 색을 보니 동양화의 채색화 중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동양화처럼 보이는 이 그림에 화려한 금빛 액자는 이색적이면서도 어색하면서도 알쏭달쏭한 어울림이었다.